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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A/Column

프레디 프리먼 어머니를 기억하며

by No.47 2021. 5. 31.

 

2017년 WBC C조의 승자는 도미니카와 미국으로 결정되었고, 결국 캐나다 국가대표로 첫 출전 하였던 프리먼의 활약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프리먼이 캐나다 유니폼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바로 그의 어머니를 추억하기 위해서 였다.

프리먼의 어머니는 토론토,아버지는 윈저 출신으로 부모님 모두 캐나다인이다.

그의 아버지(프레드 프리먼)는 12세가 되던 해에 할아버지(에드 프리먼)의 직장문제로 인하여 캘리포니아에 건너오게 되었다.

3년 후 다시 캐나다의 윈저로 돌아가 캘리포니아로 완전히 이주하기까지 15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었는데, 프리먼은 이 15개월의 시간에 정말 감사한다고 말하였다.

바로 이 1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인 로즈마리 프리먼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캐나다의 오샤와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프리먼은 3명의 형제들 중 가장 막내로 태어났었다.

프리먼이 티볼을 시작하게 되었던 5세 무렵, 그의 어머니는 프리먼이 좌타자로서 소질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었다고 한다.

"제가 좌타자로서 타석에 들어서자 코치님은 우타석에서 타격을 할 수 있게 방향을 바꾸어주셨습니다." - 프레디 프리먼

"그러자 로즈마리는 바로 말했죠. '이 아이는 타고난 좌타자입니다. 저희는 더 이상 이곳에서 경기를 하지 않겠어요.'" - 프레드 프리먼

본래 우완이었던 프리먼은 어머니의 예상대로 훌륭한 좌타자로 성장하였고 9세가 되던 해에 리틀리그로 스카우트가 된다. 하지만 1년 뒤 비극이 찾아오게 되었다. 바로 그의 어머니가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가장 슬프고 힘겨웠던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눈을 감으신 후 다른 모든 사람들이 병실을 떠났지만, 저는 끝까지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 프레디 프리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계속 관을 두드리고 있었죠." - 프레드 프리먼

우리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어머니를 추모하는 프리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피부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착용하게 된 그의 시그니처인 롱 슬리브가 대표적인 예이며, 5번의 등번호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이었던 9세부터 12세까지 착용했던 등번호였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담겨져 있는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를 늘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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